한가한 어느날 오후 성남에 위치한 남한산성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물샐틈 없이 굳건히 쌓아올린 웅장한 성곽의 위세에 한참을 감탄하며 거닐다 문득 이 수많은 벽돌을 만들고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고와 희생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유적지, 건축물, 나아가 모든 기술과 과학의 발전에는 열정과 함께 희생도 녹아있습니다.
신약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동일합니다. 새로운 작동기전의 신약이 탄생할때마다 우리는 그 결과물만 보고 감탄하기 일쑤지만 사실 그 과정속에는 실험동물들의 희생이 켜켜이 숨어있습니다.
신약이 개발되기까지는 통상 10~15년 가량이 소요됩니다. 이중 초기 3년부터 8년까지는 통상 비임상 시험이 진행되는데 비임상시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기 전에 동물에게 먼저 약물을 투여해 안전성을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일반적으로 비임상시험 초기에는 쥐(mouse, rat)와 기니피그 등 작은 동물을 대상으로 하고 이후에는 토끼, 개, 돼지, 원숭이 등 좀 더 몸집이 큰 동물을 활용합니다.
첫 동물 실험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에는 동물실험(비임상시험)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돼 있고, 고대 로마에서는 돼지와 염소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근현대에서도 동물실험이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습니다. 1949년 원숭이 ‘알버트2세’가 인간보다 먼저 우주여행에 성공하며 유인 우주선의 안전성을 확인했으며, 개나 초파리 등 다양한 동물들이 우주생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대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을 전염병에서 구해낸 다양한 백신과 치료제도 동물을 매개로 개발되었습니다.
신약물질을 테스트하기 전 동물실험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동물(포유류)과 사람의 DNA 구조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침팬지와 사람의 DNA는 99%, 쥐와 사람의 DNA는 81% 가량이 같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침팬지가 사람과 더 유사하기는 하지만 연구현장에서는 주로 쥐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비용적 측면과 함께 쥐의 높은 번식력과 관리의 용이성 때문입니다. 특히 쥐는 개체 간의 차이가 크지 않아 데이터의 통계적 유의성 확보에 훨씬 유리합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실험체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늘 논란이 뒤따릅니다. 동물의 생명도 존귀하기에 이러한 희생이 따르는 것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실험을 통해 확인된 효능과 안전성 데이터가 있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보다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기에 동물실험은 철저한 윤리기준과 실험 프로토콜에 따라 진행됩니다. WHO에서는 동물실험에 대한 3R(Replace, Reduce, Refine) 원칙을 권고하고 있으며, IACUC(실험동물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실험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한편 불필요한 동물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동물실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임상시험 전문기업의 육성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질환과 유사한 질환동물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상용화할 수 있는 운영 노하우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비임상시험은 신약개발 사업의 첫 관문으로 신약개발 가능성을 사전에 평가할 수 있는 판단기준이 되며, 이를 통해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국내에는 비임상 유효성 시험평가 전문기관인 노터스 등이 대표적인 기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