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와 열매, 그늘 뿐 아니라 인류 최대의 난적 ‘암’과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난소암을 시작으로 유방암, 위암, 폐암, 방광암 등 여러 암종에서 뛰어난 효과를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처방되고 있는 항암제 중 하나인 ‘탁솔(taxol)’의 주인공 ‘주목’ 나무입니다. 주목은 나무 껍질이 붉은 빛을 띠고 속살도 유달리 붉어 주목(朱木)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흔히 주목을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인 나무라고 칭하는데, 대단히 느리게 자라는데다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고 목재도 잘 썩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져 유유자적 하던 주목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과학자들이 항암물질로 연구를 시작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오랜 세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목을 염증치료약으로 써오던 것에 착안한 것인데,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신장염, 부종, 당뇨병 등에 대한 민간요법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탁솔(파클리탁셀)은 ‘미세소관 억제제’로 세포의 미세소관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해 암세포의 세포분열을 방해합니다. 기존의 항암제와 달리 DNA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항암제입니다. 다만 항암제 개발 과정 중 두 가지 큰 문제 점이 대두됐습니다. 하나는 탁솔 성분을 100년 가량 된 주목 나무의 잎과 껍질에서 추출하는데 나무 3그루에서 추출되는 양이 고작 1mg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환자 1명을 치료하는데 주목나무 6그루가 필요한 셈입니다. 이로인해 초기 주목나무 벌목과 산림 황폐화에 대한 문제가 심각했으나 지금은 배양 식물세포의 발효법을 통해 다량의 탁솔을 쉽게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하나는 탁솔이 체내에서 녹기 어려워 주사 투약 시 독성이 강한 부형제(물에 녹지 않는 약물의 주사 투여 때 용해될 수 있도록 첨가하는 제제)를 함께 주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부형제는 쇼크사까지 유발할 수 있는 인체 과민반응 부작용이 있어 반드시 항히스타민제나 부신피질호르몬 등을 사전에 투여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랐습니다.

이러한 불편함은 파클리탁셀 3세대 개량신약인 ‘아필리아(Apealea)’의 개발로 해결됐습니다.

에이치엘비 미국 자회사 엘레바(Elevar Therapeutics)가 글로벌 판권을 보유한 아필리아는 2020년 1월 유럽에서 난소암 치료제로 승인된 약물로 항암제 주입 전 사전처치가 필요 없고 짧은 주사제 주입 시간으로 환자의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특히 별도의 부형제를 함께 투여할 필요가 없어 이에 따른 부작용까지 최소화했습니다.

아필리아는 22년 상반기 독일, 영국에서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며 이후 스위스 등 유럽 전역 국가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계속 진화해 온 탁솔의 진화가 또 한번 주목받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