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감기로 인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께서 약국에서 사오신 가루약은 정말 먹기 싫었습니다. 새하얀 빛깔에 방심해 입에 털어 넣는 순간 강렬히 느껴지는 가루약의 쓴맛은 아픈중에도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가루약을 먹을때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왜 아이들 약은 가루약이 많을까?’

쓴 맛이 강해 먹기 어려운 가루약을 굳이 아이들에게 처방하는 이유는 별도의 소아용 제형이 시판되지 않는 의약품이나 나정(코팅이 되지 않은 알약)을 적정 용량에 맞게 복용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소아의 경우 여러가지 알약을 나눠 먹이기 힘들기 때문에 모두 갈아서 혼합 복용하는 것이 용이한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의식을 잃은 환자라면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할텐데요. 이런 경우 경구용 제제가 아닌 주사제의 투여가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원료의 의약품이라도 환자의 연령이나 상태에 따라 효능을 전달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의약품의 형태와 복용 방식 등을 일컬어 ‘제형’이라고 통칭하는데요. 의약품의 제형은 약물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약효를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화학, 물리약학, 제제공학 등 다각도 측면이 고려돼 설계됩니다.

  • 다양한 의약품 제형과 주의사항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형태는 알약입니다.

알약은 정제(타블렛)와 캡슐제제로 나뉘는데요. 정제는 의약품의 복용을 쉽게 하고 주성분이 너무 빨리 붕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코팅한 것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체내에 약물이 흡수 되도록 설계된 서방정(徐放錠)이나, 장에서 녹아 작용하는 장용정(腸溶錠), 입에서 녹여 먹을 수 있는 구강붕해정, 씹어서 복용하는 츄어블정 등이 정제의 형태입니다.

캡슐제제의 경우 의약품을 캡슐에 충전하거나 캡슐기제로 성형하여 만든 고형제제를 의미하는데, 캡슐이 위까지 도달한 후에 녹아 약물이 체내에 흡수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약제의 성격에 따라 경질캡슐과 연질캡슐로 구분됩니다.

그 외에 피부나 점막에 바르는 연고제, 수용성 액상 물질 안에 크고 작은 분자들이 분산되어 젤리처럼 되는 겔제, 주사로 적용하는 주사제, 수분 및 영양보급 등의 목적으로 주사제와 혼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수액제 등이 있습니다.
제형에 따라 복용 시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서방정의 경우 잘라먹거나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면 약물이 한꺼번에 방출되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장용정의 경우에도 장에서 흡수되도록 코팅돼 있으니 임의로 자르거나 가루로 복용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캡슐제제의 경우, 캡슐을 벗기고 가루만 복용한다면 장에서 흡수될 약물이 위나 식도에서 작용하여 약효가 떨어질 수 있고 위와 식도의 점막에 손상을 줄수도 있습니다.

이번 알쓸신약에서는 의약품의 효능만큼 다양한 제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소개드린 제형외에도 최근에는 3D프린팅 기술을 접목해 환자 맞춤형 의약품을 개발하는 등 보다 편리하게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제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환자의 편의를 위해 계속 변신하는 의약품의 변신은 무죄, 앞으로 또 어떤 획기적인 제형이 개발될지 몹시 기대됩니다.